고전 가담항설 #3 - 동명이인 사망 코드의 역류

새벽 2시 14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소재 대학병원 지하 2층 중앙 서버실이었다.


야간 당직을 맡은 의료정보팀 전산 엔지니어 박우진 주임은 주기적 실행으로 예정된 병원 EMR(전자의무기록) 데이터베이스 배치 로그를 점검하고 있었다.


서버 랙에서 불어 나오는 냉기가 감도는 가운데, 예고 없이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듀얼 모니터 화면에는 붉은색 에러 문구가 일렬로 나타났다.


`[FATAL DB_ERR: Unique Constraint Violated - Pt.ID: 840315-1****** 이진우]`


두 환자 데이터는 동일한 식별 키값으로 인해 충돌하고 있었다.


병원에는 이름,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성별까지 완벽하게 일치하는 '이진우' 두 명이 입원해 있었다.


한 명은 본관 6층 신경외과 중환자실에서 대형 교통사고로 3년간 뇌사 상태였으며,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70대 말기 환자 이진우(가명)였다. 다른 한 명은 본관 4층 일반 외과 병동 404호에서 급성 맹장염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내일 정오 퇴원을 앞둔 30대 회사원 이진우였다.


그때 6층 중환자실 당직의가 뇌사 환자의 심정지를 공식 선언하고 전산망에 사망 선고(Code Black) 및 사망 진단 플래그를 입력했다.


그러나 극히 짧은 시간 동안 발생한 전산 DB 키 충돌로 인해, 사망 처리 코드는 6층 중환자실이 아닌 4층 일반 병실에 입원해 있던 30대 이진우 차트에 잘못 기록되었다.


"뭐야, 왜 코드가 저쪽으로 들어가?"


박우진은 이를 단순한 시스템 오류로 판단하고 즉시 트랜잭션 롤백(수정 취소) 쿼리를 입력했다.


엔터 키를 누르는 순간, 콘솔 창에 이전에 본 적 없는 기이한 시스템 거부 메시지가 나타났다.


`[ROLLBACK FAILED: 사자(使者)의 수령 날인이 완료된 영혼은 반환할 수 없다.]`


"이게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인가..."


오류 메시지가 아니었다. 개발 문서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한문 조합으로 이루어진 시스템 문구였다.


그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환자 차트를 수동으로 분리하기 위해 본관 4층 병동으로 달려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4층에 도달하여 열린 순간, 박우진은 숨을 멈췄다.


일반 병동 복도는 한겨울 지하 영안실에서 풍길 법한 극도의 냉기와 부패한 포르말린 악취로 가득했다. 천장 위의 형광등은 미세하게 떨리며 점멸을 반복했다.


간호사 스테이션 안에는 당직 간호사들이 모두 깊이 잠든 듯 책상에 머리를 엎고 있었다.


그리고 404호 병실 앞.


희미하게 깜빡이는 녹색 비상구 유도등 불빛 아래, 키가 2미터를 넘어선 거대한 검은 도포 차림의 형체가 서 있었다.


얼굴이 존재해야 할 공간에는 심연의 어둠만이 회전하고 있었고, 그 그림자는 404호 문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스르륵-


병실 문은 소음 없이 열렸다. 그림자가 침대 옆으로 다가가 깊게 잠든 30대 청년 이진우의 가슴에 길다란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청년의 입과 코에서 푸른 연기 형체가 뽑혀 나와 검은 그림자의 옷소매 속으로 흡수되었다.


"잠깐만요!"


박우진이 고함치며 병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검은 그림자는 안개처럼 소멸했다.


침대 위의 삼십대의 청년, 이진우가 눈을 번쩍 떴다.


그러나 그의 동공은 완전히 뒤집혀 흰자만이 드러났다.


청년이 입을 열었다. 목구멍에서 흘러나온 것은 젊은 남성의 음성이 아니었다.


육층 중환자실에서 삼 년 동안 부패하던 환자의 거칠고 갈라진 쇳소리였다.


"...여기가... 어디인가... 내 다리가 어찌 이리 가벼운가... 나는 아직 죽지 않았는디..."


동시에 병원 전역에 6층 중환자실의 비상 코드가 울렸다.


인터폰 무전기 너머로 당직 간호사의 혼란이 담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선생님! 6층에서 사망 판정을 내렸던 환자의 시신이... 흰 천으로 덮어두었던 환자가 갑자기 일어서서 날뛴다! 자신이 내일 퇴원해야 한다고, 30대 남성의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다!"


의학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참사가 벌어졌다.


저승의 행정적 오류로 영혼이 오판되어 수습되었고, 그 때문에 산 자와 죽은 자의 혼령이 서로의 육신에 강제로 삽입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두 사람은 일주일 후, 신체와의 부조화로 인한 급성 면역 거부 반응과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같은 날짜, 같은 시간대에 최종적으로 사망했다.


박우진은 즉시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전산 데이터베이스는 시스템 유지보수 업체에 의뢰하여 완벽하게 포맷되었고, 사건은 '희귀 감염병으로 인한 동반 쇼크사'로 처리되었다.


그러나 그 대학병원 전산실에서는 현재도 심야 2시 14분에, 아무런 로그인 시도가 없는 404번 데이터베이스 테이블에 정체불명의 외부 접속자로 추정되는 서명 하나가 반복적으로 남겨진다고 한다.


`[ACCESS LOG: 差使(차사) - 수령 대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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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가담항설 원전 고찰: 구비문학대계 《동명이인 저승차사》 기록]


본 이야기는 《한국구비문학대계 7-14》(대구 달성 편)과 조선 시대 민간 야담집에 광범위하게 등재된 《동명이인 저승사자》 및 《신체와 혼령이 뒤바뀐 아버지》의 전승 기록을 현대 대학병원 전산망 배경으로 새롭게 구성한 것입니다.


한국의 고전 설화와 민간 신앙에서 저승차사는 전지전능한 신적 존재가 아니었으며, 인간 세상의 관료처럼 서류를 검토하고 장부를 대비하여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로 기록되었다. 이 점으로 인해 이름과 본관, 혹은 생년월일이 동일한 '동명이인(同名異人)'을 오판하여 엉뚱한 산 사람의 영혼을 잡아가는 심각한 행정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더욱 기괴한 점은 사자가 뒤늦게 실수를 인지하고 영혼을 회수하려 할 때의 전개였다. 이미 이승의 본래 육신은 염습이 완료되고 장례를 치렀기에, 처지를 잃은 영혼이 우연히 숨을 거둔 타인의 빈 시신 속으로 강제 진입하여 부활하면서 노인의 몸에 청년의 혼백이, 남성의 몸에 여인의 혼백이 깃들어 살아야 했던 비극적인 참사들이 구술로 전해 내려왔다.


인간의 생사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죽간과 붓에서 수억 바이트의 첨단 전산망 코드로 진화했다 하더라도, 거대한 관료제적 착오가 불러오는 서늘한 비극은 0과 1의 디지털 신호 속에서도 숨을 죽인 채 도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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